연구공간 L Commonwealth 세미나
6.2.2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349.1]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은 정체성들의 평행적 투쟁을 특이성들을 다중으로 구성하는 반란적 교차, 혁명적 사건으로 변형한다.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에 관한 위의 정의는 올바른 것이긴 해도 당혹스럽게 소박한 것이다. 그러한 개념적 추상은 결코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의 구성의 뒤에 있는 열망의 복잡성과 풍부함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열망들 중 몇몇은 완전히 혁명의 방향에로 향해있지만, liberation 운동은 또한 언제나 억압받는 자들 간의 내적 대립과 오해에 의해서 역병에 걸린다. 평행적 행로 사이에서 의사소통하는 번역의 과정은 종종 오역의 불협화음으로 붕괴한다. 불화는 혁명적 운동의 일상적이고 통상적인 조건이다.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의 과제는 그러므로 liberation 행로를 기획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다중 안에서의 대립들을 해소하기 위한 구조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의사결정이 다중 만들기와 혁명 과정을 지속적으로 진척시키도록 구축될 수 있는 방식을 탐구해야 될 필요가 있다.
[350.1] 우리가 다중 만들기에 기여하는 교차에 관해 말할 때, 우리는 전통적으로 동맹 혹은 제휴로서 이해된 것과는 상이한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중은 공통적인 것 안에서 특이성들의 마주침을 통해 구성된다. 물론 동맹과 제휴의 운동은, 종종 상이한 사회적 그룹들의 평행적인 종속 및 투쟁에 대한 인식과 함께, 공통의 적에 맞서서 구성된다. 하지만 동맹과 제휴는 결코 emancipation을 위해 분투하는 고정된 정체성을 넘어설 수 없다. 반란적 교차로 성취된 절합의 과정은 단순히 정체성들을 짝짓는 것이 아니라, 특이성들 간에 공통적인 것을 수립하는 liberation 과정 속에서 특이성들을 변형하는 것이다. 이러한 절합은 다중 만들기 안에서 사회적 존재를 변형하는 존재론적 과정이다. 다중 만들기는 공통적인 것을 나누고 공유하는 분유(partage)의 지점에 도달해야만 한다. 다중 만들기와 반란의 사건은 용해나 통일의 과정이 아니다. 다중 만들기와 반란의 사건은 오히려 공통적인 것 안에서의 영속적인 마주침에 의하여 구성되는 특이성들의 증식을 작동시킨다.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은 이러한 절합 및 구성의 과정을 결정하고 지지해야만 한다.
[350.2] 이 지점에서 우리가 여기서 제기한 혁명에 대한 파악이 20세기 코뮤니즘 운동이 제안했고 실천했던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전통의 주류는 새로운 정체성의 창조라는 면에서 반란 및 혁명을 제시한다. 사회의 나머지와 구분되며 사회의 나머지를 선도할 수 있는 전위적 주체로서의 새로운 정체성말이다. 가령 레닌은, 어떤 점에서는 그것이 반대하는 중앙 권력의 정체성을 반영하면서, 대항권력을 형성하는 당의 헤게모니 아래 투쟁하는 사회 그룹들의 절합을 인식한다. 러시아 혁명과정을 상술하면서 트로츠키는 유사하게 대중의 자발성에 관한 소박한 생각에 대해 경고한다. 그가 주장하길 대중 반란은 계획과 의사결정에 책임지는 혁명적 지도력의 ‘모의’를 요구한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파악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러시아의 실재에 손을 대기 위한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수단일 수 있었으며, 실제로 그 시대의 사회주의 운동이 생산한 다양한 입장들보다 혁명적 행위를 위한 결정에 도달하는 데 보다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주체성론과 혁명적 의사결정론으로서는 우리의 현대 세계에는 완전히 부적합하다. 필요한 것은 혁명적 의사결정을 수립하는 조직적 과정 및 (위로부터가 아닌) 다중 운동 안에서부터의 지배 권력의 전복이다.
[351.1] 코뮤니즘 전통은 노동과 생산의 변형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오늘날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을 위한 새로운 잠재력을 탐구하는 데 유용한 방법을 제공한다. 앞서 3장에서 우리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 ―즉 가변자본과 불변자본의 관계― 과 관련하여 (사실은 노동력의 기술적 구성인) 자본의 변화하는 기술적 구성을 검토하였다. 이제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구성과 관련하여 그것의 기술적 구성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 용어법이 애매하게 들리게끔 할지도 모르지만, 기초적 전제는 다음과 같이 단순하다. 즉 사람들이 노동에서 하는 것과 노동에서 그들이 실행하는 기술들 ―기술적 구성― 이 정치적 행위의 영역에서 그들의 능력 ―정치적 구성― 에 기여한다는 것. 만약 프롤레타리아의 기술적 구성이 삶정치적 생산이 헤게모니적으로 되고 그 질들이 생산부문에 도입되어 변화한다면, 삶정치적 노동에 특수한 능력들에 상응하는 새로운 정치적 구성이 가능하다. 기술적 구성의 변형이 자발적으로 (조직화와 정치적 행위를 요구하는) 투쟁과 혁명의 새로운 정치적 형상을 창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착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지시한다. 오늘날 삶정치적 생산의 본성과 질들은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이 정의하는 정치적 구성과정을 가능하게 한다.
[352.1] 기술적 구성과 정치적 구성의 관계를 제기하는 것이, 전위적 조직화에 대한 물음을 대단히 상이하게 조망하면서 그것을 역사화한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대략적 시대구분을 그려서 해명될 수 있다. 전문노동자의 위계적 서열이 산업생산을 특징지은 20세기 초에는 볼셰비키당, 독일의 인민위원회, 그리고 다양한 평의회운동들이 저 기술적 구성을 해석하는 정치적 형상을 제공한다. 공장에서의 전문노동자 전위에 상응하는 전위당. 상대적으로 탈숙련된 노동자 대중이 산업생산을 특징지은 20세기 중반에는 노동조합을 단순히 당을 위한 ‘전동벨트’로 다루면서 그리고 산업생산을 봉쇄하는 것과 봉급 및 사회적 복지의 지속적 상승을 요구하는 것 간의 양자택일이라는 전략을 채택하면서, 대중정당이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 적합한 정치적 형상을 창조하려고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기술적 구성과 정치적 구성의 관계에 대해 주장하는 것은 그러한 정치적 조직화를 타당하게 만드는 것인데, 그러한 주장이 생산적 노동자의 조직화 및 그들의 능력들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려고 시도하면서, 정치적 조직화가 그 상황의 실재에 뿌리내리는 방식을 인식하는 한에서 그러하다. 노동의 기술적 구성이 심오하게 변화된 오늘날에, 어떠한 전위적인 정치형태를 다시 제안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이다.
[352.2] 오늘날 출현하고 있는 삶정치적 생산의 헤게모니는 새로운 민주주의적 능력을 수반한다. 중복되는 세 가지 발전들이 여기서 중요하다. 첫째로 산업생산의 헤게모니 시대에 자본가는 일반적으로 노동자에게 생산을 조직하는 협동의 수단들과 도식들을 제공했지만, 삶정치적 생산에서는 노동이 점점 더 협동을 창출하는 원인이 된다. 그 결과 둘째 삶정치적 노동은 생산을 봉쇄하고 그것이 개입할 때마다 생산성을 축소시키는 자본가의 명령으로부터 점점 더 자율적으로 된다. 셋째로 자본가의 명령이 지시하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협동 형태와 대조적으로, 삶정치적 노동은 수평적인 네트워크 형태를 창조하는 경향이 있다. 삶정치적 노동의 이러한 세 가지 특징들 ―협동, 자율, 그리고 네트워크적 조직화― 이 민주주의적인 정치적 조직화를 위한 견고한 구성요소들을 제공한다. 사람들이이 노동에서 사장을 필요하게끔 훈육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또한 정치에서의 사장을 필요로 한다는 레닌의 주장을 상기해보라. 오늘날의 삶정치적 생산은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노동에서 사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의사소통하고 협동하기 위한 확장적 웹을 필요로 한다. 사장은 점점 더 단지 노동의 장애물일 뿐이다. 노동의 기술적 구성에 관한 초점은 그리하여 우리에게 사람들이 일상적 삶에서 실행하는 민주주의적 능력들에 관한 하나의 전망을 부여한다. 노동의 이러한 민주주의적 능력들이 직접적으로 민주주의적인 정치적 조직화의 창조에로 번역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민주주의적인 정치적 조직화를 상상하고 창조하기 위한 견고한 토대를 제시한다.
[353.1] 우리는 현대적인 민주주의적 조직화 형태가 전위적 조직화와 관련하여 제시하는 중요한 전략적 진전에 주목해야만 한다. 역사적으로 전위는 혁명 과정에 시동을 걸어 자본주의 체계를 탈안정화하는 책무를 지녔었다. 반스탈린주의적이었으며 국가 코뮤니즘 의회당에 반대했던 1970년대 서부 유럽의 코뮤니즘 운동 및 자율주의 운동은 이러한 제의를 새로 만들고 확장했다. 자본주의를 탈안정화하는 전술은, 자본주의 사회의 위계와 명령의 틀을 허물어 자본주의 사회를 심오하게 탈구조화하는 전략에 의해 보완되어야만 한다. 삶정치적 노동이 제안하는 민주주의적 조직화 형태는 혁명 활동의 정의에 또 다른 요소를 첨가한다. 다중이 공통적인 것을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권력을 구성하려는 기획이 그것이다. 따라서 혁명은 새로운 사회적 삶의 형태 발생을 목표로 한다. 삶정치적 영역에서 결정을 위해 요구되는 지식과 의지는, 말하자면, 역사적 존재에 새겨지며, 그리하여 의사결정이 언제나 수행적이고 그에 참여한 주체의 실질적, 인류학적 변형으로 귀결되는 정도로, 혹은 의사결정 조건의 존재론적 변형 그 자체인 정도로 역사적 존재에 새겨지는 것이다.
[354.1] 몇몇 독자들은 우리의 방법이 여기서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결합시킨 방식 때문에 불편해 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마치 우리가 경제적 힘들이 사회적 삶의 다른 모든 영역을 결정한다고 믿는 듯이, 우리에게 경제주의의 혐의가 있다고 의심하면서 말이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노동에서 표현되는 기질, 능력, 기술을 탐구하는 것이 다중의 일상적으로 일반화된 능력들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할 때, 그것은 단지 많은 것들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그러나 중요한 하나이다. 아렌트는 그녀가 (명령에 따른 작업의 기계적 반복과 같은) 노동 능력이 자율, 의사소통, 협동, 그리고 창조성을 요구하는 정치적 삶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정치적 삶과 경제적인 것의 연관성을 경시한다. 하지만 삶정치적 노동은 점점 더 이러한 고유하게 정치적 능력들로 정의되며, 그리하여 경제영역에서 출현하고 있는 이러한 능력들은, 사실상 두 영역간의 점점 더 광범위한 중첩을 드러내면서, 정치영역에서의 민주주의적 조직화의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논의는 경제적 요구와 정치적 요구를 결합하는 혁명적 호소의 오랜 노선 안에 자리매김될 수 있다.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결합하는 우리의 슬로건은 ‘가난과 사랑’ 혹은 ‘힘과 공통적인 것’일 것이다. 빈자의 liberation과 사회적 협동의 힘의 제도적 발전. 어느 경우든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의 교차를 인식하는 것은 현대의 사회적 삶을 기술하는 데 본질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의 메커니즘과 실천을 구성하는 데 근본적인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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