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1.
반란은 혁명으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해 제도적 과정 속에서 지속되어야 하고 공고해져야 한다. 물론 반란에 대한 그런 제도적인 생각이 기존의 쿠데타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국가제도들을 그에 필적하고 상응하는 제도들로 대체할 뿐이다. 우리가 말했듯이 다중은 국가장치들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는 데 관심이 없으며, 심지어 그 장치들을 여타의 목적을 향하도록 하는 데조차도 관심이 없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중이 국가장치들을 손에 넣길 원하는 것은 오직 그것들을 해체하기 위해서이다. 다중은 국가를 자유의 왕국으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착취를 보장하고 소유가 행하는 통치를 방어할 뿐만 아니라 모든 정체성의 위계들을 유지하고 보호(police)하는 지배의 장(seat)으로 여긴다. 국가제도들과의 정치적 연계가 종속에 대항하는 투쟁들에 유용하며 필요하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해방은 그것들의 파괴를 목적으로 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반란이 제도에 반한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했듯이 사실 반란은 제도들을, 다른 종류의 적절한(just) 제도들을 필요로 한다.
355-2.
사회이론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분할은 사회계약을 기초로 생각하는 주류 노선을 사회갈등을 제도들의 기초로 간주하는 비주류 노선에 맞서는 것으로 놓는다. 주류 노선이 갈등을 사회 바깥으로 던져버림으로써 (당신이 계약에 대한 동의하면 당신은 반란과 갈등을 일으킬 권리를 빼앗긴다) 사회적 통일을 유지하고자 하는 반면, 비주류 노선은 갈등을 사회에 내적인 것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불변의 토대로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토머스 제퍼슨은 그가 다중이 주기적으로 적어도 세대(그는 ‘20년 마다’라고 생각한다)마다 한번씩 정부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켜야 하며 새로운 헌법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이러한 사상의 비주류 노선에 기여한다. 비주류 노선의 다른 중요한 두 지지자인 마키아벨리와 스피노자는 권위와 억압에 맞서 분명하게 정의된 저항과 반란(rebellion)의 길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다중 안에서의 균열되고 변화하는 갈등의 길을 따라 제도들을 근거짓는 갈등을 생각한다. 비주류 노선의 저자들은 사회적 제도들의 발전이 갈등에 열려있고, 또 갈등에 의해 구성될 때에만 민주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356-1.
우리가 제도들을 주류 노선을 따라서만 생각하는 한, 반란은 교착상태에 가로막히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으로 제도적 지속성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반역(revolt)과 반란(rebellion)은 속히 지배질서에 뒤덮이고 그 안으로 흡수된다. 웅덩이에 떨어지지만 즉시 원상복구되는 고요한 수면을 볼 뿐인 돌처럼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정체성에 기반한 제도의 지배적 형태로 돌입하는 것은 대의를 통해 작용하고, 통일과 일치를 요구하며, 반역에 의해 열린 사회적 파열을 중화하는 데 복무한다. 우리는 정부[수립] 선포에 돌입하는 반란의 지도자들의 말을 얼마나 여러 번 들었던가? “여러분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무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대표하겠습니다.” 그러나 비주류 노선에 따르면, 갈등에 기반한 제도적 과정은 그 파열의 힘과 권력을 부정하지 않고도 반란을 공고히 할 수 있다. 앞서 자끄리에 대한 우리의 논의에서 살펴보았듯이, 반란은 그것이 일단의 새로운 집단적 습관들과 실천들, 즉 새로운 삶 형태를 창안하고 제도화할 때에만 강력해질 수 있고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가령 장 쥬네는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요르단의 페다이들과 미국의 블랙팬써들 사이를 여행하는 중에 이 집단들의 “스타일”에 매료되었다. 그것은 쥬네가 그들의 독특한 제스처와 정서뿐만 아니라 그들이 행한 새로운 삶 형태의 창안, 공통의 실천들과 행위들을 의미한 바이다. 우리에게 역사가들의 재능과 도구가 있다면, 현대의 다양한 봉기들이 어떻게 대안적인 제도적 형태들로 공고해져왔는지를 연구하는 데 분명 유용할 것이다. 예를 들어 1969년 뉴욕에서의 스톤월 반란1의 파열적(disruptive) 힘이 다양한 게이․레즈비언 조직의 형성을 통해 어떻게 지속되었는지,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는 남아공의 투쟁이 일어나는 동안 1976년의 쏘웨토 봉기2 같은 반란들이 어떻게 제도적 과정의 짜임새의 일부가 되었는지, 1970년대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그 중에서도 특히 포르또 마르게라, 피렐리, 피아뜨 공장에서 있었던) 반란들이 노동자의회와 다른 정치적 제도들의 새로운 형태를 구축함으로써 어떻게 지속되고 발전되었는지, 혹은 1994년 멕시코에서 싸빠띠스따 봉기가 자율적 모임들(까라꼴 또는 기초적인 공동체구조, 그리고 좋은 정부 협의회3)을 창조함으로써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말이다. 핵심은 각 사례에서 그 제도적 과정이 어떻게 반란에 의해 창조된 사회적 파열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확장하며 발전시키는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357-1.
이제 우리는 제도의 새로운 정의에 필요한 몇 가지 요소들을 곁에 두고 있다. 제도들은 그것들이 지배권력에 대항하는 반란에 의해 작동되는 사회적 파열을 확장하는 동시에 내적 불화에 열려있다는 의미에서 갈등에 기반한다. 또한 제도들은 삶 형태를 가리키는 집단적 습관들, 실천들, 그리고 능력들을 공고히 한다. 끝으로 제도들은 그것들을 구성하는 특이성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변형된다는 점에서 제약이 없다. 제도에 대한 이러한 관념은 특이성들의 다양체를 축소시키지 않고 특이성들이 그 마주침들을 관리할 수 있도록 맥락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앞서 “사랑의 훈련”이라고 불렀던 것과 밀접하게 상응한다. 그것은 특이성들의 힘을 감소시키는 부정적인 마주침들을 피하고, 그 힘을 증가시키는 기쁜 마주침들을 지속시키며 반복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되는 제도들은 반란과 혁명의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357-2.
우리는 싸이버네틱 네트워크에서의 생산적 활동에 대한 공통적 경험들에 기반을 둔, 제도에 대한 유사한 정의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네트워크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몇몇 초기 저작들의 열정을 특징짓는 일련의 신화들(네트워크는 통제될 수 없다, 네트워크의 노골성(transparency)은 언제나 선하다, 싸이버네틱 떼는 늘 똑똑하다)에 주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트워크 테크놀로지의 경험은 다양체와 상호작용으로 특징지워지는 새로운 의사결정 과정들의 발전을 이끌어냈다. 오래된 사회주의 엘리트들은 “의사결정 기계”를 꿈꾸었던 반면, 네트워커들과 네트유저들의 경험은 무수한 미시정치적 길들로 이루어진 제도적 의사결정을 이루었다. “미디어가 되어라”는 네트워크에서의 표현에 대한 집단적 통제가 정치적 무기가 되는, 소통의 제도적 구축이라는 노선이다. 우리는 여기에서도 갈등과 다양체를 통해 정의되고 집단적 습관들과 실천들로 이루어지며 특이성들의 변형에 열려 있는 제도에 대한 정의를 발견한다.
358-1.
우리가 내린 제도의 정의에 대한 두 가지 기본적인 이의가 떠오르는데, 그것은 정말이지 사회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이 표준적으로 상정하는 것과 우리가 내린 정의 간의 거리를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제도들과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의 개체성과 정체성을 적실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회학적 이의를 상상해본다. 실제로 관습적인 사회학적 관념에 따르면 개인들은 제도들 안으로 들어가서 정체성으로서 나온다. 달리 말해, 가령 사랑에 대한 욕망을 결혼으로 풀고 자유에 대한 욕망을 쇼핑으로 푸는 그런 삶의 공식들을 개인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제도들은 개인들이 [미리] 확립된 행위의 유형들을 따르도록 조용히 강제한다. 그러나 이러한 창조된 행위유형들은 결코 사회 전체의 획일화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인종․젠더․계급 속성에 따르도록 (마치 그 속성들이 자연적이며 필연적인 양) 강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정체성 형성을 규정한다. 이와 반대로, 제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개인에서 출발하지도 정체성으로 끝나지도 않으며, 순응을 통해 작용하지도 않는다. 지배권력에 맞선 반란 속에 있고 종종 상호갈등 속에 있는 특이성들은 제도적 과정에 돌입한다. 우리가 말한 그대로, 특이성들은 항상 이미 다수적이며 자기변형의 과정에 끊임없이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제도적 과정은 이처럼 삶 형태를 창조함으로써 특이성들이 그 상호작용과 행위들의 어떤 일관성을 달성하도록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정체성에 고정된 그런 유형들이 아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아마도 동인(動因)의 소재와 관련될 것이다. 관습적인 사회학적 관념에 따르면 제도들은 개인들과 정체성들을 형성하는 반면, 우리의 생각에서는 특이성들이 그 결과 영구히 유동적인 제도들을 형성한다.
359-1.
우리는 제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주권의 기초를 형성할 수 없다는 정치학자들과 법이론가들의 이의를 상상해본다. 이러한 관점은 경제적․사회적 세계에서의 개인들의 삶이 자연상태에서와 같이 위기와 위험, 그리고 희소성에 의해 특징지워진다고 상정한다. 개인들은 제도에 돌입할 때에만, 그리고 그럼으로써 적어도 그들의 권리와 권력의 일부를 주권적 권위로 이전할 때에만,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다. 법이론가들은 사회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 법적 요구와 의무 간의 관계가 제도에 있어 불변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할 때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 제도들은 구성된(constituted) 권력의 토대로서, 즉 주권의 입헌적(constitutional) 질서로서 복무해야한다. 이와 반대로, 우리의 생각에 따르면 제도들은 구성된 권력보다 구성적(constituent) 권력을 형성한다. 제도적 규범들과 의무들은 규칙적인 상호작용들로 확립되지만, 그것들은 진화의 과정에 지속적으로 열려있다. 다중을 구성하는 특이성들은 자신의 권리나 권력을 이전하지 않고 그럼으로써 주권권력의 형성을 금하지만, 각각은 특이성들의 상호적 마주침 속에서 더욱 강력해진다. 따라서 제도적 과정은 다중이 직면하고 있는 두 가지 주요한 위험에 맞서 보호의 (그러나 보장은 없는)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그 위험은 외적으로는 지배권력의 억압이며, 내적으로는 다중 안에 있는 특이성들 간의 파괴적 갈등들이다.
359-2.
반란을 사회적 존재의 짜임새를 변형하는 제도적 과정으로 확대하는 것―이는 혁명을 정의하려는 최초의 것으로서 훌륭하다. 칸트가 프랑스 혁명은 혁명으로서가 아니라 “자연법에 토대를 둔 헌법의 진화”로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선언할 때 그는 이 정의에 가까이 간다. 그는 특히 그 과정의 공적, 보편적 성격을 강조한다. “이 사건의 핵심은 인간이 행한 중요한 행동들이나 범죄들에 있지 않으며 ... 다른 것이 땅 속에서 솟아오른 듯이 와서 그 자리를 차지하는 동안 하나가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사라지는 화려한 구식의 정치적 구조들에 있지도 않다. 정말이지 이런 것이 아니다. 이 거대한 혁명들의 게임에서 스스로를 공적으로 드러내며 혁명과 관련된 사람들 한쪽을 다른 한쪽에 반해서 그렇게 보편적이면서도 사심없이 편드는 것은 단지 보는 사람들의 사유방식이다.” 혁명은 반란이 일단 제도적 과정이 된 것이며 통치(정부)의 한 형태이다. 이를 칸트는 공적인 것이라고 정의하며 우리는 공통적인 것이라고 부를 것이다.4
360-1.
칸트는 계속해서 사회적 존재를 혁명이 변형하는 것은 역사에서의 혁신을 구성하며 미래를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그 보편성 때문에 이러한 사유방식은 인류 전체의 성격을 일거에 보여주며, 동시에 그 사심없음 때문에 인류의 적어도 경향적인 도덕적 성격, 인간으로 하여금 좋은 것을 향한 진보를 희망하게 해줄 뿐 아니라 그 능력이 현재에 대하여 충분한 한에서 이미 그 자체가 진보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통치의 새로운 형태로서의 혁명은 실상 진보에 대한 칸트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미래 사이에 꽉 물려있으며 기동할 수 있는 여지를 별로 남기지 않는다. 혁명은 이미 구성된 권력의 압박과 항상 싸워야하며, 과거의 축적된 사회적 무게와 항상 싸워야 한다. 예를 들어 혁명가들이 성자들과 왕들의 머리들을 떼어냄으로써 모독한 프랑스와 까딸루냐의 성당들의 고딕 양식의 앞면을 생각해보라. 그렇다. 귀중한 문화유산을 그들이 파괴한 것에 우리도 분노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권력의 상징들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려는 그들의 시도를 이해한다. 혁명가들이 자신들의 행동이 우리를 미래로 출발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때조차도 과거는 종종 돌입하여 다시 우리에게 자신을 부과한다. 예를 들어 토끄빌은 과거가 때로 어떻게 혁명적 미래에 몰래 다시 나타나는가를 서술한다. 그러나 이는 반동적인 인물들이 종종 주장하듯이 역사의 법칙이나 혁명의 불가피한 운명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가능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보가 첫째, 자연적 법칙으로서가 아니라 혁명적 투쟁에 토대를 둔 것으로서 제시될 때, 둘째, 제도적 형태로 공고화되고 강화될 때 진보에 대한 칸트의 신념을 공유할 수 있다. 혁명이 새로운 형태의 통치를 창출하는 것은 과거를 저지하고 미래를 향해 여는 것이다.5
-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25337.html [본문으로]
- http://ko.wikipedia.org/wiki/%EC%86%8C%EC%9B%A8%ED%86%A0_%ED%95%AD%EC%9F%81 [본문으로]
- 해리 클리버는 juntas를 councils로 번역하고, caracoles과 juntas를 “다양한 자율적 공동체들 간의 활동들을 조정하기 위한 지방정부 조직”이라고 표현한다. (http://jayul.net/view_article.phpa_no=1385&p_no=7&key=%C1%C1%C0%BA+%C1%A4%BA%CE) [본문으로]
- 도도님의 번역을 옮김. (http://minamjah.tistory.com/16) [본문으로]
- 각주 4와 같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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